昊天笑談 : 여름하늘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우리나라에 대입해 보면 다음이나 네이버가 삼성전자를 인수한 셈이다.
소프트웨어/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하드웨어 업체를 인수한 셈인데… 과연 이런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삼성전자를 인수한다는 의미

지금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업체가 하드웨어 업체를 인수했다는 말들은 별 의미가 없다. 이는 밀접한 두 분야간 융합을 통한 시너지란 점에서 당연한 현상이고, 어쩌면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융합이 한국에 대입되는 경우에는 중소기업 대 대기업 또는 대기업대 대기업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중소기업과 재벌의 양상으로 현시되는 이 나라의 독특한 사정이다.
한국에는 대기업이 없다. 오로지 중소기업과 재벌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중소기업 혹은 대기업이 삼성전자라는 재벌을 삼킨다는 것은, 이 나라 국민들이 모두 금발로 변하고, 파란 눈으로 변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네이버나 다음이 삼성전자를 인수하려면 삼성전자가 아니라 삼성과 싸워야 한다.
말 그대로 기업과 기업의 싸움이 아니라, 기업과 재벌의 싸움... 다시 말하면, 네이버 대 이건희 + 검사 + 판사 + 국회의원 + 2MB와의 싸움이다.
게임이 되질 않는다.


재벌만 있고, 대기업은 없는 한국

MS, 노키아, 토요타, 닛산, HP, DELL, 애플, GM, 포드, BMW, Daimler Benz
내로라 하는 이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말 그대로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기업”이다.
얘네들은 삼성처럼 휴대폰도 만들고, 배도 만들고, 그릇도 만들고, 설탕도 만들고, 청바지도 만들고, 가방도 만들고, 놀이공원도 만들고, 심지어 경비까지 보는 재벌과는 다르다.
특정 분야 및 그 유관분야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구사하며 세계를 시장으로 성장해 왔다.
따라서, 이들의 생존은 아주 치열하다. 그 분야에서 도태되면 그걸로 끝일뿐, 삼성처럼 다른 분야에서 땜빵을 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곧 빈번한 M&A의 한 이유이기도 하며, 이러한 기업생태로 인하여, 재화의 생산과 판매라는 단순한 시장원리가 아니라, 기업들간에도 시장원리가 작동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의 후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잉여 기업들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수 십 개의 기업군으로, 수 백, 수 천 개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재벌에게 부가 집중되고, 사람들이 모인다. 이렇게 모은 부와 사람들을 통하여 재벌은 다시 그들의 부를 유지한다.
따라서 부의 원천이자, 포트폴리오의 근원인 계열기업들을 순환출자라는 구조로 엮어버리고, 손에서 놓질 않는다.
특정 분야의 계열기업이 위태해지면 매각이나 청산이 아니라, 국회의원과 정치인을 찾아가서 국고를 지원받는다.
특정 분야의 중소기업이 유망해지면 인수나 합병이 아니라, 국회의원과 정치인을 찾아가서 또 다른 계열사를 세운다.


결국은 도태할 한국 기업들

오너경영은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여줬다.
1980년대의 불확실성에서 이건희는 과감하게 반도체 분야 투자를 단행했고, 그의 용단으로 오늘날 삼성전자라는 기업이 나왔다. 주주의 눈치를 볼 필요 없는 1인 독재하에서만 나타나는 과감함과 성공이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다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위험과 수익에 대한 계량화가 점점 가능해지고 있으므로, 1인의 용단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유관분야간 원활한 제휴, 합병이 있어야만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하고, 이 과정에서 잘못된 지식은 토대되는 일종의 집단지성과 같은 이치이다.

자기 혼자 모든 것을 통제하고 생산하고, 차지하겠다는 재벌의 태도는,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세계 시장에서 버틸 수 없다.
이미 재벌이 되어버린 한국 기업들이 시장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식으로서의 M&A에 적응할 수조차 없어졌다.
당장 삼성전자를 보라. 애플의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를 표절하고, MS와 노키아의 특허를 침해하여 로열티를 지불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모든 것을 독식하겠다는 탐욕에서 나온 것이다.
독식하려다가 능력이 안 되니 결국 표절이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1개 오너의 독재로, 독불장군처럼 모든 것을 통제하고, 그 결실을 혼자 독차리 하려는 재벌의 탐욕은 글로벌화 되어가는 시장의 변화에서, 집단이 발휘하는 시너지를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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